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아람코를 이끄는 저 세상 재력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아람코를 이끄는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사우디를 개혁하고, 비전 2030을 추진하며, 세계 정치와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아람코를 이끄는 저 세상 재력가

빈 살만 왕세자의 출생과 성장

1985년 8월 3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과 그의 세 번째 부인인, 파다 빈트 팔라 사이에서 태어난 빈 살만. 아버지 살만 왕의 공식적으로 밝혀진 13남매 중 빈 살만은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정식 이름은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로 흔히들 빈 살만 왕세자라고 부르는 건 전임 왕세자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와 구분하기 위해 빈 살만 왕세자로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빈 살만이 어릴 때만 해도 훗날 그가 사우디의 왕세자가 될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이미 너무 많은 형들과 사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자신이 늘 형들에 비해 후순위라고 느꼈다는 빈 살만. 한 번은 여름 휴가로 스페인을 갔는데, 아버지의 첫째 아내와 그 사이에서 나온 여섯 자녀들은 스페인 마르베야 궁전에서, 빈 살만과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형제들은 바르셀로나의 호텔에서 묵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01년과 2002년, 아버지의 첫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이 차례로 심장병으로 사망한 후, 빈 살만은 슬픔에 잠긴 아버지를 위로하고 보필해 주며 곧 많은 자식들 중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빈 살만은 다른 사우디 왕자들과 달리, 서양에서 교육을 받지 않고 사우디에서만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리야드 근처의 사립학교를 나와 킹 사우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차석으로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거의 대부분을 아버지가 하는 일이나 회의에 참석하느라 평범한 10대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는 빈 살만은 그래서 그런지 남의 비판을 잘 듣지 않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008년 4월 6일, 24살이 된 빈 살만은, 바비 공주로 알려진 사라 빈트 마스 흐르 공주와 결혼해 그 사이에서 아들 둘, 딸 둘, 살만 왕자와 마쉬 하르 왕자, 파다 공주와 노라 공주 네 명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왕세자 자리에 오른 빈 살만

빈 살만은 대학을 졸업한 후, 킹압둘라이즈 연구 기록 보관소 재단의 의장, 리야드 경쟁위원회 사무총장 등 주의 여러 기관에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2009년 12월, 아버지 살만이 리야드 주지사에 오르게 되자, 특별고문으로 임명돼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2011년,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이 됐을 때도 그는 아버지의 개인 고문을 보좌하며, 조금씩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2015년 1월, 6대 왕이었던 압둘라 빈 압둘라이즈 왕이 사망하자, 빈 살만의 아버지 살만은 8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아버지가 왕이 되고 난 후, 빈 살만은 서른 살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이 되고, 왕실 법원 사무총장과 부총리까지 두루 임명되며 사우디의 경제와 안보를 총괄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아버지 살만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사우디의 실세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게 된 빈 살만. 때문에 빈 살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남자라는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빈 살만은 왕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사망해도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1932년에 건국된 사우디아라비아는 초대 왕인 압둘라이즈가 1953년,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훈에 따라 모두 왕위는 형제 상속이 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초대 왕이 남긴 아들이 무려 44명이나 된 탓에 ‘왕자의 난’이 일어날 것을 걱정해 형제 상속제를 당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2대 사우드 왕부터 현재의 7대 살만 왕까지 알고 보면 모두 초대 왕의 자손들로 모두 형제 상속에 의해 왕위를 계승해 온것입니다.

왕위 계승권을 빼앗은 빈 살만의 개혁 정책

2017년 6월 2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살만 왕과 그의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은 왕위 계승권을 가진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기습적으로 체포하고, 빈 살만을 새로운 왕세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빈 살만은 사우디의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빈 살만은 왕세자 자리에 오른 후, 아버지 살만 왕을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의 국정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우디를 개혁하고 현대화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개혁 정책은 사우디 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빈 살만은 사상 최초로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허용하고, 남녀가 함께 일하고, 여성들이 축구 경기장이나 콘서트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35년 만에 사우디에 영화관을 개장하고, 대중문화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사우디의 젊은 층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비전 2030과 네옴 프로젝트로 사우디의 미래를 그리는 빈 살만

빈 살만은 석유에만 의존하는 사우디의 경제 구조를 변화시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비전 2030’이라는 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첨단 기술과 다양한 복지 시설을 갖춘 최첨단 도시 ‘네옴’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의 44배나 되는 면적에 5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여, 아랍의 두바이와 견줄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빈 살만은 역대 사우디 지도자들 중 최초로 아랍의 전통 의상을 입지 않고, 서구식 노타이 슈트 차림으로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IT 거물 빌 게이츠와 손정의 회장과 만나기도 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때도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에도 능통합니다. 그는 하루에 거의 18시간씩 일하는 엄청난 일 중독자로, 보좌관들에 따르면 그가 쉬는 시간은 게임을 하거나, 왕좌의 게임이나 워킹 데드 같은 미드를 볼 때라고 합니다.

빈 살만의 재력 수준

빈 살만은 세계적인 석유 기업 아람코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람코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채굴 비용은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아람코는 2018년 처음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데뷔하며, 영업이익이 공개되었습니다. 아람코의 영업이익은 2018년 한 해 2,240억 달러로, 애플의 3배, 유럽연합 28개 회원국의 국방비 전체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아람코의 회사 가치는 2조에서 3조 달러 정도로 추정됩니다.

아람코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 기업으로, 사우디 왕실이 지분의 백 퍼센트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우디의 실질적인 왕이나 다름없는 빈 살만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한 보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빈 살만의 개인 재산을 약 8,500억 파운드, 1,246조 원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는 포브스가 2019년 3월에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보다 9배쯤 많은 규모입니다.

빈 살만은 그만큼 엄청난 씀씀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택이라는 별명을 얻은 프랑스에 있는 ‘샤토 루이14’라는 저택을 3,900억 원에 구입했습니다. 이 집에는 실내, 실외 풀장은 물론 극장, 와인 저장고, 스쿼시 코트, 대형 수족관, 나이트클럽 등이 있습니다. 또한 그는 프랑스 남부로 휴가를 떠난 때, 세계 최고급 요트 세레네를 보고 한눈에 반해 6,250억 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는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 금액인 약 5,000억 원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수 초상화 ‘살바로트 문디’의 실구매자라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두 얼굴의 왕세자로 비난받는 빈 살만의 암흑면

하지만 빈 살만은 자신의 개혁에 동참하지 않거나,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투옥 시키거나 제거하는 등, 두 얼굴의 왕세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사촌 형이었던 무함마드를 협박해 왕위 계승권을 빼앗았고,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촌 왕자들과 사우디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이 암살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이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이 언론인 암살 사건으로 인해 빈 살만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압박과 비난을 받으면서 만수르처럼 유럽 프리미어리그의 구단을 인수하려다 결국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빈 살만의 한국방문

2019년 6월, 빈 살만은 1박 2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에너지 신사업 분야 등 모두 10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이때 우리나라에 투자하기로 한 돈이 무려 10조 원에 달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자주국방 모델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를 본 따 자체적인 무기 개발 기술력을 키우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우리나라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우디의 왕세자가 된 지 이제 5년 차,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개혁적인 지도자? 아니면 무자비한 지도자? 그리고 그는 앞으로 살만 왕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뒤를 이어 사우디의 새로운 왕이 될 것입니다. 훗날 그는 또 어떤 왕으로 기억될 것인지.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이자, 비공식 세계 최고 갑부, 무함마드 빈 살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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