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으로 1000억을 번 사람?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의 모든 것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없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F1이죠. ‘운전하는게 뭐가 스포츠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이 글에서는 F1 드라이버가 요구하는 놀라운 신체적, 정신적 능력과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간으로 꼽히는 루이스 해밀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F1이 스포츠인 이유

F1은 Formula One Racing의 약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경주 대회입니다. F1은 단순히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초고속에서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운동 신경이 필요합니다. F1 머신의 핸들을 돌리려면 자신의 체중에 5배에 가까운 중력을 이겨낼 수 있는 근력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운전석의 온도는 섭씨 50도를 넘는데요. 이렇게 탈수가 될 것 같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 2시간 이상을 초 집중하여 운전을 해야 하는 지구력까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F1 드라이버는 대부분 만능 스포츠맨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운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F1 드라이버는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들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럼 이런 선택받은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간의 삶은 어떨까요? 오늘은 세계에서 운전을 잘하는 남자, 루이스 해밀턴 이야기입니다.

루이스 해밀턴의 어린 시절

루이스 해밀턴은 1985년 런던 북부에 위치한 하트 포드셔주에서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5살 때 아버지로부터 무선 조종 자동차를 선물 받았는데 이걸 너무 잘 다뤄서 성인도 참가하는 대회에다가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¹. 해밀턴의 아버지는 해밀턴에게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재능을 살려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해밀턴의 아버지는 해밀턴이 6살 때 고카트를 사주며 운전을 연습할 수 있게 해줬고 그가 학업에서 뒤쳐지지만 않으면 계속해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쯤에서 예상하겠지만 레이싱은 고카트 레이싱조차 돈이 있어야 발을 드릴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차량만 사는게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비를 하는데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밀턴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리판매원, 부동산 중개업, 심지어는 세척기 판매하는 일까지 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또 기술공부도 열심히 해서 직접 고카트를 정비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아버지의 노력이 보답하듯 해밀턴은 금세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8살 때 크고 작은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머쥐더니 10살 때는 전국의 영국 학생들이 참여하는 카트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우승 트로피를 주던 사람은 잘 나가는 F1팀 중 하나인 맥라렌의 단장이었는데요. 해밀턴은 단장에게 자신이 언젠가는 당신의 팀의 레이서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고 단장은 9년 뒤 성인이 되면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해밀턴은 이후에도 국내외에서 계속 우승하며 엄청난 유망주로 주목받게 됩니다. 한 도박업체는 그가 23살 이전에 F1 레이스에서 우승을, 25살 이전에는 F1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배당을 걸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자 9년 뒤에 연락을 하려던 맥라렌의 단장은 해밀턴에게 먼저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이스 해밀턴의 F1 데뷔

역대급 재능을 보이던 해밀턴을 잡기 위해 단장은 맥라렌의 드라이버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며 계약서를 제시했습니다. 이 계약서에는 훗날 F1 드라이버 자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해밀턴은 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역대 F1 드라이버 계약을 맺은 가장 어린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는 그가 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계약이 되어 상당히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후에 밀턴은 당시 이런 지원이 없었으면 축구 선수도 뛰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해밀턴은 영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였던 애슐리 콜과 학교 대표로 축구 경기를 뛰기도 할 정도로 신체 능력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싱은 생각과는 다르게 굉장한 피지컬을 요구합니다. 햇빛과 엔진의 열기에 드라이버들이 입는 두꺼운 보호복 내부는 50도가 넘게 되는데요. 1시간 반 정도의 경기가 진행되면 3리터 가까운 땀을 흘리게 되고 몸무게가 2kg에서 4kg 정도 빠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규정상 브레이킹을 도와주는 ABS나 조항을 도와주는 전자 장치들이 없어 근력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요. 코너에서 급 감속을 시도할 때는 80kg 정도의 압력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하고 핸들을 꺾을 때는 10kg의 아령을 들고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또 원심력을 견디기 위해 목 운동을 하는 것도 필수인데요.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면 피지컬 이외에도 순간순간 변수에 대처하는 반응 속도도 빨라야 하고 스티어링에 있는 수십 개의 버튼을 상황에 따라 눌러가며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도 꽤 좋아야 합니다. 여기에 차량에 관한 지식도 전문가 수준으로 알아야 하니 생각보다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어쨌건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맥라렌의 지원을 얻게 된 해밀턴은 각종 카트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뒤 1인 경중 자동차를 레이싱을 하는 포뮬라 대회에 데뷔하게 됩니다. 해밀턴은 F1의 3부 리그격인 F3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하는데요. 그는 빠르게 적응하며 성적을 끌어올리게 됩니다.

루이스 해밀턴의 F1 성공

포뮬라 대회는 한 시즌에 20개 가량의 레이스를 벌리고 그 레이스에서 제일 많은 포인트를 얻는 드라이버와 팀이 우승을 하게 되는 시스템인데요. 한 시즌 20번의 경기 중 15번이나 우승하며 넘사벽의 실력을 보여준 그는 현재는 F2로 이름을 바꾼 GP2로 금방 올라가게 됩니다. GP2에서도 그에게 시련이란 없었는데요. 한 레이스에서는 초반에 실수해 18위까지 떨어졌음에도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2위로 마무리하는 등 인상적인 레이스를 보여주며 팬들에게 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데뷔 다음 시즌에는 우승까지 차지하며 그야말로 해밀턴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동시에 마침 같은 팀에 F1 드라이버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며 빈자리가 생기게 되었고 해밀턴은 곧바로 F1의 드라이버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이는 최초의 흑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이었습니다. 해밀턴이 데뷔한 2007년은 공교롭게도 당시 세계 최고 드라이버인 마이클 슈마허가 은퇴한 해이기도 했는데요. 레이싱을 몰라도 누구나 이름 한번씩은 들어봤을 정도로 F1의 상징이었던 슈마허가 은퇴하면서 이제 인기가 식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해밀턴의 대비하면서 이런 걱정들은 기우에 그치게 됩니다. 해밀턴은 데뷔 직후 9경기에 레이스에서 모두 3등 이내를 거머쥐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팀 내에서의 분쟁으로 인해 분위기가 안 좋게 흘러가며 해밀턴은 아쉽게 시즌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혼자하는 레이싱에 웬 팀 내 분쟁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F1은 웬만한 스포츠보다 팀원이 많습니다. F1은 10개의 팀에서 팀당 2대의 레이스 카를 출전시켜 총 20명이 경쟁하는 구도인데요. 한 팀은 엔지니어, 메카닉, 드라이버 포함해 약 50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레이싱카의 세팅도 드라이버의 성향에 맞게 완벽하게 맞춰야 하고 레이스 중간중간 거치는 정비에서도 타이밍이 완벽해야 하는만큼 꽤나 팀웍이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팀 내에서 2명씩 드라이버가 출전하는 것을 비유하자면 마치 쇼트트랙에서 우리나라 선수 2명이 결승에 올라가 경쟁하는 것과 같은데요. 서로를 도우면서도 경쟁해야 하는 애매한 관계입니다. 당시 맥라렌 팀의 상황은 슈퍼 신인 해밀턴과 2년 연속 우승을 했던 또 다른 팀원인 페르난도 알론소가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며 둘 다 1등을 놓친 격이었죠. 결국 맥라렌의 단장은 해밀턴을 밀어주기를 결정하고 다음해 새로운 팀원을 영입하며 우승 경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때부터 해밀턴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습니다. 2008년에는 마지막 레이스에서 뒤집어쓰기를 성공하며 첫 월드 챔피언에 올랐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팀 동료인 니코 로즈베르크와의 접전을 펼쳤습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해밀턴이 우승을 차지했으나, 2016년에는 로즈베르크가 우승을 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해밀턴은 메르세데스의 독주를 이어가며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에도 연속으로 월드 챔피언을 수상했습니다. 이로써 해밀턴은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 F1 역사상 가장 많은 7번의 월드 챔피언을 기록한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해밀턴은 월드 챔피언 외에도 다른 여러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랑프리 우승 횟수는 현재까지 103회로 F1 최다 우승자이며, 폴 포지션(출발선 맨 앞자리) 횟수는 103회로 F1 최다 폴 포지션자이고, 포디움(3위 이내) 횟수는 192회로 F1 최다 포디움자입니다2. 또한 총 득점수도 F1 역사상 가장 높은 4,443.5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3. 해밀턴은 또한 F1에서 가장 많은 그랑프리에 출전한 드라이버로도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총 313번의 그랑프리에 출전했으며, 이는 루벤 바리켈로의 기록(322번)을 넘어서기 위해 앞으로 10번의 그랑프리만 더 출전하면 됩니다.

해밀턴은 F1 드라이버로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멋진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인종차별과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자신의 팀과 스폰서들에게도 환경 친화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루이스 해밀턴’에서 ‘루이스 해밀턴-싱’으로 바꾸어 자신의 인도계 어머니의 가문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해밀턴은 자신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많은 팬들과 후배들에게 영감과 꿈을 주고 있습니다.